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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러브레이스 — 최초의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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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S' SHOULDERS : THE GREAT ARCHIVE

아다 러브레이스, 최초의 프로그래머

1843년, 영국의 한 여성이 이탈리아어로 쓰인 기계 설명 논문을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번역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원문의 세 배에 달하는 주석을 덧붙였습니다. 그 주석 안에는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기계가 베르누이 수를 계산하는 방법이 단계별로 기술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컴퓨터가 탄생하기 100년 전에 쓰인, 역사상 최초의 알고리즘이었습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아다 러브레이스(Ada Lovelace).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Lord Byron)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유산은 시가 아니라 수학과 논리의 언어로 쓰였습니다. 그녀는 기계가 숫자를 넘어 음표와 글자와 기호를 다룰 수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기계가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 질문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100년이 지나 앨런 튜링이 다시 물었고, 오늘날 우리가 인공지능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바로 그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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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러브레이스

Archive Index

Part 1. 시인의 딸 : 바이런의 유산과 수학의 길

Part 2. 배비지의 엔진 : 최초의 컴퓨터를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

Part 3. 최초의 알고리즘 : 번역을 넘어 창조로

Part 4. 시대를 100년 앞선 상상 :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Part 5. 아다의 유산 : 프로그래밍 언어 Ada에서 AI까지


Part 1. 시인의 딸 : 바이런의 유산과 수학의 길

1815년 12월 10일, 런던에서 오거스타 에이다 바이런(Augusta Ada Byron)이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조지 고든 바이런 경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었지만, 동시에 방탕하고 충동적이며 무책임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아다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가족을 떠났고, 아다가 여덟 살이 되던 해 그리스에서 사망했습니다. 아다는 평생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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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앤 이사벨라 밀뱅크(Anne Isabella Milbanke)는 수학을 공부한 지식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딸이 아버지처럼 시인의 광기에 물들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아다의 교육을 수학과 논리학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아다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12세에 비행 기계를 설계하려 했고, 새의 날개와 기체 역학을 연구하며 직접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다에게는 분명히 아버지의 피가 흘렀습니다. 그것은 광기가 아니라 상상력이었습니다. 수학과 시가 만나는 그 경계에서 아다는 살았습니다.

 

17세에 아다는 수학 튜터로 유명한 메리 서머빌(Mary Somerville)을 만났습니다. 서머빌은 당대 가장 저명한 여성 과학자였고, 아다의 지적 능력을 즉각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1833년, 서머빌은 아다를 한 만찬 자리에 데려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있었습니다. 아다의 삶을 바꿀 만남이었습니다.

아다는 성인이 된 후 신경계 질환으로 자주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어린 시절 앓은 홍역의 후유증이나 또 다른 질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건강 문제는 평생 그녀를 괴롭혔지만, 동시에 그녀가 지적 작업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아다는 1835년 윌리엄 킹(William King, 후에 러브레이스 백작)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러브레이스라는 이름은 결혼 후 얻은 것입니다.

Part 2. 배비지의 엔진 : 최초의 컴퓨터를 처음으로 이해한 사람

찰스 배비지는 수학자이자 발명가였습니다. 그는 1820년대부터 '차분 기관(Difference Engine)'이라는 기계식 계산기를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항해 표, 수학 표 등 당시 손으로 계산하던 복잡한 수치 표들을 기계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하고 인쇄하는 장치였습니다. 아다가 만찬에서 배비지를 만났을 때, 그는 차분 기관의 미완성 시제품을 자신의 살롱에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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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분 기관

 

아다는 그 기계를 보자마자 매료되었습니다. 다른 방문객들이 신기한 기계 장치로 감탄하고 지나치는 동안, 아다는 그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녀는 배비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보냈고, 배비지는 그녀의 이해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10년 넘게 지속되는 지적 파트너십을 맺었습니다.

 

1837년, 배비지는 차분 기관보다 훨씬 야심찬 기계를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석 기관(Analytical Engine)'이었습니다. 해석 기관은 단순한 계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컴퓨터와 놀랍도록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력 장치(펀치 카드), 저장 장치(숫자를 기억하는 '저장소'), 연산 장치(계산을 수행하는 '작업소'), 출력 장치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건부 분기와 반복 실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해진 계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결과에 따라 다른 동작을 할 수 있다는 의미였습니다.

"배비지 씨의 기계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먼저 이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지만, 나만이 그것의 가능성을 상상했습니다."

— 아다 러브레이스 (출처: 배비지에게 보낸 편지 및 다수 기록에 기반한 내용)

배비지는 천재적인 발명가였지만,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능력은 부족했습니다. 해석 기관은 당시 영국 정부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했고, 결국 그의 생전에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842년, 이탈리아의 수학자 루이지 페데리코 메나브레아(Luigi Federico Menabrea)가 배비지의 튜린 강연을 바탕으로 해석 기관에 관한 논문을 프랑스어로 발표했습니다. 배비지는 아다에게 이 논문을 영어로 번역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역사를 바꾼 번역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Part 3. 최초의 알고리즘 : 번역을 넘어 창조로

아다는 메나브레아의 논문을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원문에 자신의 주석을 추가했습니다. A부터 G까지 7개의 주석이었는데, 분량은 원문의 세 배에 달했습니다. 배비지가 이 주석들을 보고 놀라 왜 처음부터 원문보다 훨씬 완성도 높은 내용을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아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번역자의 역할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지 못할 만큼 그 작업에 몰입해 있었습니다.

 

7개의 주석 중 마지막 G 주석이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합니다. 아다는 이 주석에서 해석 기관이 베르누이 수(Bernoulli numbers)를 계산하는 방법을 단계별로 기술했습니다. 베르누이 수는 수학적으로 복잡한 수열로, 당시 손으로 계산하기 매우 번거로운 것이었습니다. 아다의 주석은 기계가 어떤 순서로 어떤 연산을 수행해야 하는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분기를 택해야 하는지를 상세하게 기술했습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이것은 컴퓨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것도 반복문과 조건문을 사용하는 꽤 정교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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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러브레이스와 차분 기관
주석 내용 현대적 의미
A~E 해석 기관의 구조와 원리 설명 컴퓨터 아키텍처 개념
F 기계가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가능성 제시 AI 창작의 개념적 선구
G 베르누이 수 계산 알고리즘 — 역사상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 반복문, 조건분기, 변수 개념 포함

번역 작업은 9개월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아다와 배비지는 이 기간 동안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내용을 다듬었습니다. 이 편지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 그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배비지는 아다의 주석에서 몇 가지 오류를 지적했고, 아다는 수정했습니다. 최종 결과물은 1843년 테일러의 과학 기념집(Taylor's Scientific Memoirs)에 번역자 이니셜 'A.A.L.'로 게재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이 과학 논문에 이름을 직접 올리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Part 4. 시대를 100년 앞선 상상 :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아다의 주석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단순히 알고리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기계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보여준 깊은 사고였습니다. 그녀는 해석 기관이 숫자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음표와 글자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기호를 다룰 수 있다고 상상했습니다. 조건 사이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계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컴퓨터가 범용 정보 처리 기계로 작동하는 방식의 정확한 예측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다는 동시에 기계의 한계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해석 기관이 새로운 것을 독자적으로 창조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계는 우리가 수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수행하라고 명령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기계는 어떤 분석적 관계나 진실도 독자적으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 구절은 훗날 '러브레이스의 반박(Lovelace's Objection)'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기계는 프로그래밍된 것 이상을 할 수 없다는 이 주장은, 100년 후 앨런 튜링이 자신의 논문에서 직접 언급하며 반박하려 시도한 바로 그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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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러브레이스
아다의 상상력은 음악으로도 뻗어나갔습니다. 그녀는 주석 F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예를 들어 화음과 음악의 과학이 수와 음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에 어느 정도 기반한다고 가정하면, 해석 기관은 얼마나 정교하고 과학적인 음악 작품을 작곡할 수 있을까?" 이것은 AI가 음악을 작곡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180년 전에 정확히 예고한 것이었습니다. 아다는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시인의 딸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다의 지적 절정기는 짧았습니다. 1843년 주석 작업을 마친 후, 그녀는 경마 도박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녀는 수학적 확률을 이용해 도박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었고, 배비지와 함께 경마 예측 시스템을 개발하려 했습니다. 결과는 처참한 재정적 실패였습니다. 그리고 1851년, 그녀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1852년 11월 27일, 아다 러브레이스는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 바이런의 묘 옆에 안장되었습니다. 평생 만나지 못한 아버지 곁에서 잠들었습니다.


Part 5. 아다의 유산 : 프로그래밍 언어 Ada에서 AI까지

아다 러브레이스는 생전에 단 하나의 과학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후 오랫동안 잊혔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컴퓨터 과학의 선구자들은 대부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앨런 튜링이 자신의 논문에서 '러브레이스의 반박'을 직접 인용하면서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미국 국방부가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의 이름을 결정하면서 아다의 유산은 완전히 부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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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러브레이스와 아버지 시인 바이런

 

미국 국방부는 수십 개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통합할 새로운 표준 언어를 개발했습니다. 그 언어의 이름으로 역사상 최초의 프로그래머를 기리는 것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1980년 공식 채택된 이 언어의 이름은 'Ada'였습니다. 오늘날 Ada는 항공, 방산, 우주 탐사 등 오류가 허용되지 않는 고신뢰성 시스템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 국제우주정거장의 일부 시스템도 Ada로 작성되었습니다.

 

매년 10월 두 번째 화요일은 '아다 러브레이스의 날(Ada Lovelace Day)'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 분야에서 여성의 업적을 기리는 날입니다. 이 날은 2009년 영국의 과학 저술가 시오반 오코너(Sioban O'Connor)가 처음 제안한 것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서 행사가 열립니다. 아다가 살던 시대, 여성은 대학에 입학할 수도, 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 그녀는 컴퓨터 과학의 핵심 개념들을 혼자 사유했습니다.

"나는 수학의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상상력은 과학의 발견 능력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 즉 과학의 세계를 들여다봅니다."

— 아다 러브레이스 (출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841년경)

오늘날 인공지능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작곡합니다. 아다가 1843년 주석에서 상상했던 그 기계가 실현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남긴 질문, 즉 기계가 진정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가, 아니면 프로그래밍된 것을 정교하게 재조합하는 것에 불과한가는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튜링도, 오늘날의 AI 연구자들도 이 질문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36세에 세상을 떠난 시인의 딸이 남긴 질문이, 21세기 가장 첨단의 논쟁에서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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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 러브레이스 최초의 프로그래머
"해석 기관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수행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만 할 수 있습니다. 기계는 어떤 분석적 관계나 진실도 독자적으로 발견할 수 없습니다."

— 아다 러브레이스, 메나브레아 논문 주석 G(1843)에서 — '러브레이스의 반박'으로 불리는 구절

아카이브를 닫으며

아다 러브레이스는 컴퓨터가 없던 시대에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발명했습니다. 여성이 과학계에 발을 들일 수 없던 시대에 컴퓨터 과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녀는 수학과 상상력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기계의 가능성은 그것을 상상하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코드를 작성하고, AI와 대화하고, 알고리즘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모든 행위의 뿌리에 그녀가 있습니다.

GIANTS' SHOULDERS ARCHIVE

최초의 프로그래머가 남긴 상상의 여정을 추적했습니다.
다음 아카이브는 원자의 시대를 열고 그 파괴력에 맞선 두 번째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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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 Sources

  1. Ada Lovelace (trans.), "Sketch of The Analytical Engine Invented by Charles Babbage", Taylor's Scientific Memoirs Vol. III (1843).
  2. Walter Isaacson,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2014), Simon & Schuster.
  3. Suw Charman-Anderson (ed.), A Passion for Science: Stories of Discovery and Invention (2013), Finding Ada.
  4. Betty Alexandra Toole, Ada, the Enchantress of Numbers (1992), Strawberr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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